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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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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선생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담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미지 크게보기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다.
의창(義倉)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개성에 5부학당(學堂)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하고 <<신율(新律)>>을 간행, 법질서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정몽주의 초명(初名)은 몽란(夢蘭)인데,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난초 화분을 품에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꿈에 놀라 깨어나 그를 낳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다.
또 정몽주가 아홉살 때 어머니가 낮에 검은 용이 뜰 가운데 있는 배나무로 올라가는 꿈을 꾸다 깨어나 밖으로 나가 보니 그가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몽룡(夢龍)이라고 고쳤으며, 그가 관례를 치를 무렵 아버지의 꿈에 ‘중국의 학자 주공선생이 나타나 아들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여 몽주(夢周)로 고쳤다.
정몽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재주가 남달랐고, 어깨 위에 북두칠성 모양의 검은 점이 일곱개나 있었다고 한다.
포은 정몽주선생은 성리학이 고려와 조선에 뿌리내리는데 큰 역할을 함으로 동방이학의 조종으로 존숭받는 학자이다.
고려 말 국운이 기울어 가는 고려를 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한 이성계, 정도전 등의 개국세력을 상대로 고려왕조를 지키려다 개성의 선죽교에서 이방원 일파에게 피살된 인물로 후세에 충절의 표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문집에는 <<포은집(圃隱集)>>이 있고, 충절의 시조 <<단심가(丹心歌)>>와 많은 한시가 전해지고 있다.
선생은 부모님이 돌아 가셨을 때 3년 동안 부모님의 여막을 지켜 효행을 실천하였는데 이때 행한 삼년상은 우리나라 유교식 상례의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 학문, 사상, 효행을 기리기 위해 임고서원이 세워졌으며, 그 가치가 인정되어 경상북도 기념물 제 62호로 지정되었고, 포은 정몽주 유허비 또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72호로 지정되었다.

  • 담당부서 : 문화예술과 3선현담당
  • 연락처 : 054-330-6754

최종 수정일 : 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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