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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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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崔茂宣, 1325~1395)

고려말 조선 초의 발명가 본관은 (현 경상북도 영천) 광흥창사(廣興倉使)를 지낸 최동순(崔東洵)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고려에는 왜구(倭寇)가 창궐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어 왜구를 물리칠 화기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최무선은 화약을 만들기 위하여 염초의 제조법을 중국 원나라 사람 이원(李元)을 통하여 배웠고 이를 기반으로 1376(우왕 2년)에 화약개발에 성공하였고, 1377년(우왕 3년) 화통도감(火화筒통都監)을 설치케하여 화약과 각종 화기를 제조하였다.

대장군포(大將軍砲)·이장군포(二將軍砲)·삼장군포(三將軍砲)·육화포(六花砲)·석포(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불통 통)·화전(火箭)·철령전(鐵翎煎) 등 각종 화기(火器)를 제조하였고 이를 실을 수 있는 누선이라는 전함(戰艦)의 건조에도 힘썼다.

1380년(우왕 6년) 왜구가 대거 침입하자 최무선은 상원수(上元帥) 나세(羅世)와 함께 부원수(副元帥)로 참전하여 진포(鎭浦:금강하구)에서 화포·화통 등을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왜선 500여척을 전멸시켜 영성군(永城君)에 봉해졌다.

1383년(우왕 9년) 남해의 관음포(觀音浦)에 침입한 왜구를 정지(鄭地)와 함께 격파했고, 1389년(창왕 1) 화통도감이 철폐되자 최무선은 집에서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 화포법(火砲法)을 저술하였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태조는 최무선의 공을 인정하여 정헌대부·검교문하부참찬문하부사 겸 판군기시사(正憲大夫 檢校門下府參贊門下府事 兼 判軍器寺事)가 되었으며 죽은 후 태종원년 의정부 우정승(議政府 右政丞)에 추증(追贈), 영성부원군(永城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은 아버지를 이어 화기를 개발했으며 수레에 화기를 장착한 화차를 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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