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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유산

도지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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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귀정(玩龜亭)

민속자료
  • 위치 / 영천시 도남동 595번지
  • 지정번호/지정사항 / 민속문화재 20호(1980.6.17)
  • 규격 / 4,565㎡
  • 소유자 / 광주안씨문중
  • 내용
  • 이 건물은 조선 중종(1506~1544)때의 학자이며 시강원 사서설서(司書說書)를 역임한 완귀 안증 선생이 인종이 등극(登極)한 지 1년도 못되어 승하하자 스스로 사직하고 낙향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명종 원년(1546) 건립되었다.
    완귀정은 숙종21년(1695) 성재 안후정(安后靜)이 중수하였고, 식호와(式好窩)는 영조40년(1764) 후손들이 세웠다고 한다. 정침(正寢)은 안채에 해당되며 완귀정은 사랑채로서 호계천(虎溪川)을 향하여 누(樓)를 두었고, 기둥머리에는 익공(翼工)으로 장식하였다. 식호와(式好窩)는 좌·우에 누를 두었는데, 그 꾸밈을 달리하여 계절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박하게 꾸민 선비의 집으로 지방적인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strong>안증(安嶒 1494-1533)</strong>
    안증은 남원부사를 역임한 구(覯)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호는 완귀(玩龜)이며 아버지가 김종직의 문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처음부터 벼슬에는 뜻이 업고 학문에만 심취하여 성리학의 이론을 깊이 터득하였다. 후일에는 성리학의 이론이 실지 생활과는 유리되는 점이 많음을 지적하고 실학사상에 심취하였다. 1540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좌랑을 거쳐 세자 시강원 사서설서(司書設書)가 되었다. 이때부터 후일 인종이 된 세자에게 학문보다는 정치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 강론하였다. 그러나 인종이 승하하자 모든 백성은 반상의 관계없이 엄격한 평등을 지향하는 민본사상을 주창한 그의 이상은 무산되었으며, 또한 을사사화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 평소 보아둔 영천으로 내려와 평생을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 주변볼거리
  • 영천청제비, 돌할매, 만불사
  • 담당부서 : 문화예술과 문화재담당
  • 연락처 : 054-330-6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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