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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자(鄭孝子)가 얻은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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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자(鄭孝子)가 얻은 명당

영천댐의 호반에 현대식 양옥들로 단장된 새 마을이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답다. 이곳은 댐이 이루어지므로써 새로 생긴 자양(紫陽)면 소재지다. 이 소재지 서편 산기슭에 울창한 노송 등이 둘레 약 2km나 되는 큰 원을 그리며 우거져 있고 그 도래솔 안 벌에 큰 무덤들과 비석들이 있으며, 그 근처 솔밭 사이사이에는 고색창연한 옛 기와집들이 이어져 있으니 이곳이 바로 정 효자가 얻은 명당자리 일대(一帶)다.

효자의 이름은 정윤량(鄭允良), 호는 노촌(魯村), 조선 중종 때 사람이다. 양반 가문의 후손으로, 그 아버지 선무랑(宣撫郞), 정차근(鄭次謹)이 기묘사화를 피하여 영천의 대전에서 이곳 노항(魯巷)으로 옮겨 올 때, 그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원근에서 이름 대신, “정 효자”로 불리어졌다.

그러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어린 정 효자는 옷을 벗고 자리에 누운 일이 없었다. 먹고 자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아버지 머리맡에서 병간호를 하며 어머니와 근심을 같이하여 정성을 다하니 보는 이마다 놀라며 탄복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애통해 하는 모습이 더할 수 없이 애처로웠으며, 예를 행함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이윽고 묘 터를 잡아 장례를 치르는데, 백발 노승이 지나가면서, “정 효자 댁의 묘소를 어찌 이곳에 와 쓰는지 이상한 일이로다.” 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지나갔다.

이 소문을 들은 상주 정 효자는 일을 중지시키고 부리나케 그 노승을 뒤쫓았다. 십리쯤 가서 고개를 넘으니 뜻밖에도 그 노승은 기다리고 섰다가, “상주가 올 줄 알았다.” 하면서 앞장서서 여기 이 기룡산(騎龍山) 기슭에 와서는 지팡이로 혈(穴)을 짚었다. “이 혈은 기룡의 좌장혈(左掌穴)이요 ! 부귀를 겸하여 가운이 융성할 것이며 힘차게 내리 쏟는 기룡의 정기를 받았으니 위인이 날 징조라. 청룡(靑龍) 백호(白虎)가 세 겹으로 둘려졌으니 귀인이 날 터이며, 물 흐름이 보이지 않으니 부자도 날 것이요, 이와 같이 크고 귀한 판국(版局)에는 손세도 좋아 이 세상에 바로 정 효자요.” 하는 것이다.

정 효자는 이 노승을 집으로 모셔다가 후히 대접할 양으로 소매를 끌었으나 노승은 사양하며, “노승은 신령의 명을 받고 온 설학(雪學)이오,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니 오늘은 길이 바빠서 곧 가야 하오. 너무 심려하지 마시오.” 하고는 기어이 떠났다.

뒤따르던 정 효자가 언덕 위에 오르니 이미 노승은 온데 간 데 없었다. 이 정 효자는 여묘살이 삼년을 마치고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 문하에 가서 수업하여 뒤에 많은 제자를 길러 냈었으며 향풍(鄕風)도 예법에 맞춰서 다시 고친 명성이 높은 학자였다.

출처 : 충효의고장 영천(사단법인박약회영천지회)

  • 담당부서 : 문화예술과 문화정책담당
  • 연락처 : 054-330-6067

최종 수정일 :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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