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배경과 유래
영천곳나무싸움은 줄당기기에 이어서 벌어지는 대동놀이로서 영천고을의 읍치였던 영천읍과 그 주변 지역에서 대보름 명절에 벌어졌다. 영천사람들은 줄당기기의 승부보다는 곳나무싸움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줄당기기의 승부가 결정되면 미리 줄머리에 배치되어 있던 양편의 용맹한 싸움군들은 암줄과, 숫줄을 결합하는데 사용한 곳나무를 쟁취하기 위해서 격돌한다.
생성배경과 유래
영천곳나무싸움은 줄당기기에 이어서 벌어진 대동놀이로서 영천고을의 읍치(邑治)였던 영천읍과 그 주변 지역에서 대보름 명절에 벌어졌다. 영천의 읍치는 크게 내동(內東)과 내서(內西)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당시 내동지역에는 문외, 문내, 야사, 망정, 조교동 등의 다섯 마을이 속하였고, 내서 지역에는 성내, 창구, 교촌, 금노, 화룡동 등의 다섯 마을이 속하였다. 영천곳나무싸움의 기반이 되는 줄당기기의 편 구성은 읍치의 이와같은 구분을 기준으로 삼았다. 내동은 동부 편의 중심을 이루었고 내서는 서부편의 중심을 이루었다. 이 편은 영천 고을의 경계지역까지 확장되어 영천고을의 서부지역에 속하는 마을들은 모두 서부가 되고 동부편에 속하는 마을들은 동부가 되었다.
이러한 확장이 매년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큰줄을 당길 때는 어김없이 그렇게 되어서 읍치의 중심 마을들과 읍외의 주변 마을들 사이에서 물심양면에 걸쳐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졌다. 읍에서 40리나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동부의 달천 마을에서 큰 줄을 만드는데 쓸 가닥줄을 엮어서 저나른 일은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줄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줄당기기와 영천곳나무싸움에도 지역간의 연대를 과시하였다.
광주 광산의‘고싸움놀이’가 줄당기기의 대표적인 앞놀이라면, 영천의 곳나무싸움은 줄당기기의 대표적인 뒷놀이이다. 영천사람들은 줄당기기의 승부보다는 곳나무싸움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줄당기기의 승부가 결정되면 미리 줄머리에 배치되어 있던 양편의 용맹한 싸움꾼들은, 암줄과 숫줄을 결합하는데 사용한 곳나무를 쟁취하기 위해서 격돌한다. 그리하여 뺏고 뺏기고 숨기고 찾는 싸움이, 길게는 이월 초하루까지 계속되어 그때까지 곳나무를 보관하고 있던 편이 승리하게 된다.
이 놀이는 줄당기기에 이어서 행해지고 줄당기기의 부속품인 곳나무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아 줄당기기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한 놀이이지만, 사람들이 줄당기기보다 흥미로운 놀이로 인식하였고 양식적 독자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까지 보고 된 줄당기기의 뒷놀이인 전남 승주 해룡면의 코줄다리기나 경북 의성 사촌의 박시놀이와 구별되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또한 직접적인 신체의 격돌, 뺏기와 빼앗기, 도망과 추격, 숨기기와 찾기 등 극적 반전의 요소들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곳나무싸움을 다른 대동놀이와 구별시켜 주는 두드러진 자질들이라고 하겠다.
영천곳나무싸움은 1930년대까지 전승되다가 일제 탄압으로 전승이 중단되었다. 그 뒤 복원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된 끝에 1987년 복원이 이루어져 그 해 열린 영천문화제에서 공연되었고, 1996년에는 제1회 영천시민축제에서 공연되었으며, 1999년 이후 영천시 청년연합회와 영천전자고등학교가 보존단체로 지정되어 전승해 오고 있다.
출처 : 충효의 고장 영천(사단법인 박약회영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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